제목 : [ 경향신문 ] 자살의 심리적 부검 아주대의료원 정신건강연구소 이영문 소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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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0-05-24 | 조회수 : 76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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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예방&생명사랑](5) 자살의 심리적 부검
'유족의 슬픔 보듬는 ‘심리적 부검’ 우리나라 문화에서 사람이 죽었을 때 그 원인을 알기 위해 시행하는 부검(autopsy)이라는 단어는 왠지 섬뜩하다. 하물며 심리적 부검(psychological autopsy)이라는 단어가 주는 중압감은 얼마나 심하겠는가. 가까운 사람이 원인을 알 수 없는 채 갑자기 목숨을 끊어 망연자실한 유가족들에게는 더욱 낯설고 무서운 단어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서구 사회에서는 한 사람의 자살이 가져오는 연쇄적 모방자살이나 유가족들의 치유를 위해 오래전부터 도입된 지극히 기본적인 유가족 서비스 프로그램의 하나이다. 심리적 부검은 자살사망자와 관련된 정보를 수집, 자살에 이르게 된 원인을 규명하는 연구방법이다. 여기서 말하는 정보는 주변 사람들과의 인터뷰나 유서 등을 통해 파악하는 자살자의 심리상태다. 심리적 부검이 적절한 시기에 잘 이루어지면, 자살자에 대한 유가족들의 죄책감이나 원망이 줄어들고, 고통이나 우울 등의 감정을 헤쳐 나가는 데 도움이 된다. 심리적 부검의 역사는 대공황이 지나간 미국 뉴욕에서 시작된다. 1934년에서 40년 사이에 뉴욕시 경찰 93명이 연속으로 자살하면서 그 원인을 조사하기 위한 전문가 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이후 워싱턴대학에서 체계적인 조사와 더불어 현대적 의미의 심리적 부검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 연구를 통해 자살유가족에 대한 표준화된 면담기법이 사용되었고, 정신질환에 의한 자살에 대해 조작적 기준을 마련하게 되었다. 면담기법의 발달과 더불어 정신건강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심리적 부검은 핀란드, 영국, 이스라엘 등에서 1990년 이후 보편적 서비스로 자리잡고 있다. 아시아 국가 중에는 홍콩이 앞서 있다. 일본에서도 2007년 이후 자살예방법 제정과 더불어 자살자에 대한 연구가 시작됐다. 우리나라의 경우 2009년 보건복지부의 시범적 연구로 시작되었지만, 자살유가족들의 참여가 부족해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심리적 부검은 그 쓰임새가 넓다. 대표적인 예로는 군대 내에서 의문사로 발견된 군인들의 죽음을 규명하는 데 활용하는 것이다. 필자가 참여하였던 군의문사 진상규명 위원회의 경험을 참고하면, 2008년도 군대 내 의문사 120여건 중 자살로 판명된 약 60건에 대해 심리적 부검을 실시함으로써 원인 규명이 상당히 이뤄지고, 이를 통해 예방대책을 수립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다른 활용으로는 자살유가족에 대한 지지서비스가 있다. 자살유가족에 대한 인터뷰를 통해 유가족이 사망자의 죽음에 대한 느낌과 삶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며, 자연스럽게 슬픔의 배출구를 찾아가는 치료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자살유가족들이 스스로 도움을 찾을 수 있는 행동을 하는 데 주저하고 있다. 물론 지지서비스 제공을 하는 기관이 적은 이유도 있지만, 자살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아직 강하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 측면의 활용도 무시할 수 없다. 가령 보험금 지급 관련 소송이 일어났을 때, 생명보험 가입 후 2년이 경과한 사람이 자살로 판정될 경우 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 자살과 정신질환에 대한 인과관계가 충분히 설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가 자살을 야기했다고 유가족들이 주장할 경우에도 심리적 부검은 도움이 된다. 정신건강 혹은 스트레스와 연관된 자살에 대한 산업재해 인정 보상소송은 점차 증가하는 추세이다. 심리적 부검을 국가 차원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도입한 나라는 핀란드이다. 핀란드는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이 30명이 넘는 국가였다. 하지만 1988년 전체 자살 사례를 대상으로 한 심리적 부검 연구를 시작한 이래로 자살로 인한 사망이 줄어들기 시작하여 2008년 현재 10만명당 18명 수준으로 낮춰졌다. 심리적 부검에 자살유가족의 83%가 참여하였고, 전문가들에 의한 인터뷰와 지지서비스가 이루어졌다. ![]() 이영문 소장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에서 벗어나려면 자살에 대한 폭넓은 연구와 상담이 필수적이다. 유가족들의 심리적 외상을 치유하는 프로그램 도입이 전국적으로 시행되어야 한다. 자살률에 대한 사회 전체의 경각심이 필요한 것이다. 그 한가운데 심리적 부검이라는 어렵지만 가야 할 과제가 놓여 있다. 이것을 실천하는 데는 정부와 민간전문가들의 역할이 굳이 구분되지 않아도 무방하다. 당신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닙니다 - 생명사랑·자살예방 상담 핫라인 △ 보건복지콜센터 희망의 전화(129) △ 정신건강 상담전화(1577 - 0199) △ 자살예방협회 사이버상담실(www.counselling.or.kr) △ ‘친구야’ 문자상담 (SKT 010 011 017/ #1388) △ 자살예방 후원신청 문의 (e메일 : kasp2005@hanmail.net) (02 - 413 - 0892, 0893) |